Chapter 36
릴리스는 아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우 행복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그녀의 계약자와 단둘이서 가질 시간에 대한 기대감, 거기에…
“릴림, 기숙사에 가서 답을 줄게요.”
그가 드디어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드디어.
드디어!
‘아서와 마음껏….’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때.
푸욱!
무언가가 아서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
날카롭게 빛나는 무언가.
칼날이었다.
“아서!!!”
칼은 곧장 뽑혔고, 찌른 인간은 곧바로 사라졌다.
릴리스는 곧장 인간으로 변해 쓰러지는 아서를 감쌌다.
그를 받친 손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보자 릴리스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서! 아서!”
“정신차려봐 아서!”
그녀의 계약자가 힘겹게 눈을 맞췄다.
“…릴….리ㅅ…”
그의 초점이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정신차려, 아서!!”
그가 손을 뻗어 릴리스의 뺨을 건드렸다.
릴리스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기나긴 세월 동안 몇 번 보지 못했던 자신의 눈물에 놀라기도 잠시.
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서!!”
그의 손을 강하게 붙들어봤지만 손은 힘없이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아아….”
릴리스가 손을 놓자, 계약자의 손이 맥없이 널브러졌다.
“아아아아아!!!! 안 돼! 안 돼애!!!”
릴리스는 곧장 자신의 힘을 사용해 그를 회복시키려 했으나.
피식…
권능이 반응하지 않았다.
드림랜드에서 사용한 힘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회복마법만이 남았으나.
권능을 기반으로 한 회복이 아닌 인간들의 회복마법이니, 대상의 생명력을 잡아먹을 터였다.
그리고 그녀의 계약자는 이미 드림랜드에서 많은 생명력을 소모한 이후였다.
“제발제발제발제발!”
릴리스는 아주 약하게 회복마법을 발동시켰고, 이내 출혈이 멎었다.
잠깐의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현재 아서는 심장이 멎은 상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몰랐다.
“어, 어떡해야….”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릴리스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옛 마법 하나를 생각해냈다.
‘생명력을 측정하는 마법!’
그 마법을 사용한다면 대상의 생명력을 대략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아서가 위험하지 않을 딱 그 선에 맞춰서 회복마법을 건다면…
곧장 실행에 옮기는 릴리스.
우웅
주문이 떠오르는 즉시 마법이 발동된다.
그러자 누워있는 아서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많이 남아 있어라!”
릴리스는 드림랜드로 황금 벌꿀주를 가져가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제발!!”
그리고 이내….
“…어?”
릴리스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도 잊고 멍하니 아서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아서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을.
“…이, 이게 대체..?”
릴리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런 종류의 마법을 가끔 써왔고, 또 쓰는 것을 곁에서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태껏 ‘이런’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말도 안 돼…”
아서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아니 흘러나온다기 보다는 쏟아져 내리는.
가슴에서부터 시작한 그 빛의 물결은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몸은 찬란한 빛으로 뒤덮였고, 빛을 내뿜는 것을 넘어 그 자신이 빛이 된 것만 같았다.
릴리스는 그 장면을 통해 거의 잊고 있었던 한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빛의 인간?”
잠시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스는 아차, 하며 회복마법을 발동시켰다.
빛의 밝기와 양은 남은 생명력의 양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금 아서의 몸에는 엄청난 양의 생명력이 남아있다는 뜻.
우우웅!
회복마법이 강하게 발동되며 아서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보통 이정도 상처라면 수십년 수명분의 생명력이 줄어들었을 테지만, 찬란한 아서의 빛은 줄어들 낌새도 없었다.
마침내 상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약간의 흉만이 남자 릴리스는 회복마법을 정지시켰다.
멀쩡해진 아서를 보며 한숨 놓게 된 릴리스.
생명력을 보여주는 마법의 효과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찬란한 빛의 잔상에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도 복잡해졌다.
‘설마, 아서가….?’
—-
눈을 떴…..나?
나라는 존재를 깨닫자 자연스럽게 몸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긴 어디지?”
모든 게 까매서 내가 지금 눈을 뜬 건지, 안 뜬 건지.
모르겠다.
모든 게 까매서 어디가 어디인지, 위인지 아래인지, 땅인지 하늘인지.
모르겠다.
그저 어두웠다.
끝없는 어둠에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왜 여기 있더라?’
원인을 따지기 시작했지만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릴리스…?”
누군가의 이름.
“…릴리스가 누구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해냄과 동시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릴리스가 도대체 누군데 내 마음을 이토록 심란하게 만드는 것일까…
떠올리려 노력할 수록 머리가 지끈거리며 더 이상의 생각을 못하도록 막았다.
“우선 여기서 나가볼까?”
일단 나가야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을 움직여봤지만 허공을 훑는 느낌만 있을 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온몸을 뒤틀며 발버둥을 쳤지만 그럼에도 움직인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거 망한 거 같은데…?”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
움직이기도 귀찮아졌다.
포기하고 가만히 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라?”
무언가가 들렸다.
-■■■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다.
“…누구세요?”
-■■■
“네? 잘 안 들리는데…”
-■■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일단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다시금 발버둥을 쳤지만 목소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
“저기요~ 거기 누구 계십니까…?”
그 순간.
-■■■
“어라?”
목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오! 내가 움직이던 저 사람이 움직이던 어쨌거나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구나?”
그리고 목소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시점.
“…어? 잠깐만.”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악기소리?”
단조로운 음의 플룻소리가 들렸으며, 간간이 쿵쿵거리는 북의 소리도 들렸다.
그 음울한 분위기의 악기소리에 내 심장마저……어라?
문득 나는 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어?”
내 가슴에는 좁은 구멍이 나있었다.
얊고 기다란 구멍은 마치 무언가로 찔린 것 같…..
“크윽!”
머리가 지끈거렸다.
쿵쿵쿵쿵
악기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나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깐만.”
쿵쿵쿵쿵
“멈춰봐…”
휘이리리이이릴
피리소리가 들려올 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쿵쿵쿵쿵
북소리가 들려올 수록 머리도 같이 쿵쿵 울렸다.
“끄으으으윽!!”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귀를 틀어막아 보지만 악기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
악기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끝없는 불쾌함을 담고 있었다.
온세상 부정적인 감정을 한데에 몰아 넣은 것 같은……응?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악기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의미가 있던 말소리였는-
-■■, dlflfh dhehfhr go.
“!!!!!”
그 목소리에 무언가 의미가 담기기 시작하자 구토감이 치밀어올랐다.
“우우욱!”
-dlfldhk.
“안…돼……”
-dlfldhk.
“안 돼!!”
이제 악기 소리는 바로 근처에서 들려왔다.
“안 돼애!!”
그 순간 내 앞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오감을 통해서가 아닌 그저 예감에 가까운 직감.
내 앞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끝없는 어둠이.
사방을 가득 메운 이 어둠이.
전부 이 존재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
-G!G!G!
-G!G!G!G!G!
-G!G!G!G!G!G!G!
-G!G!G!G!G!G!G!G!G!
-G!G!G!G!G!G!G!G!G!G!G!
-G!G!G!G!G!G!G!G!G!G!G!
-G!G!G!G!G!G!G!G!G!G!G!
-G!G!G!G!G!G!G!G!G!G!G!
무정형의 존재는 꿈틀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뱉어내었다.
그 아득한 존재감에 내 정신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
나도 모르게 한 이름을 외쳤다.
“릴리스!!!”
—-
“………..”
“……….?”
“…어라?”
나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두운 곳이긴 했지만 방금 전에 있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포근해….”
따뜻하고, 포근했다.
저절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을 만끽하며 몸을 맡기고 있던 그때, 내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
누군가는 얼굴도 몸도 전부 흐릿했고, 말소리도 뭉개져서 뭐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세요?”
“…■■?”
내 반응을 본 누군가는 잔뜩 실망한 것 같았다….아니, 슬퍼하는 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분명 기억해야 할 무언가가 있었는데…
잊어버리면 안되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죄송함에 못이겨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내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어….”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던 내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 ■■ ■■■■.”
방금 전 어둠에서 들렸던 그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말을 대신하여 의미를 전달했다.
-계속 같이 있어줄게.
“…정말요?”
“■■.”
-그럼.
“고마워요.”
나를 그 끔찍한 어둠에서 구원해줘서.
“죄송해요.”
내가 당신을 기억해내지 못해서.
“사ㄹ….”
…어?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아무렴 어떤가.
나는 누군가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며 그 부드러움을, 따스함을 만끽했다.
‘반드시 기억해낼게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지.
하지만 일단은.
휴식을 취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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