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37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는 불규칙적으로 모습을 감췄다.

처음으로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그 허전함에 온몸이 시려왔다.

분명 포근한 어둠 속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슴에도, 그 누군가가 사라지자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설마 아예 가버린 건 아니겠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는 다시 나타났고, 또 다시 나를 품어주었다.

“■■■. ■■ ■■■■ ■■■■.”

누군가는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과하지 마요.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까.”

“……”

누군가는 말없이 나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군가는 어떤 때는 아주 잠깐, 어떤 때는 매우 길게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돌아오고는 항상 내게 사과의 말을 건네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항상 고마워할 따름이었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

나는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난 누군가에게서 달라진 점을 찾아내었다.

“머리카락!”

길고 긴 머리카락이 발치까지 늘어졌다.

비단결처럼 고운 머리카락은 주변의 어둠과는 구별되는 아름다운 검은 색을 지니고 있었다.

“…예쁘다…..”

내 솔직한 감상에 누군가는 기쁜 듯이 내게 안겨왔다.

항상 내가 안겨오던 입장이었건만, 이번에는 내가 안아주는 꼴이 되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나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 감촉을 즐겼다.

‘음… 뭔가 기억날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언제 또 이런 감촉을 느꼈더라?

고민을 해봐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고.

이번에는 옷이 보였다.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새까만 색의 이브닝드레스.

하늘하늘 움직이는 그 유려한 자태는 감탄을 자아내었다.

“…예뻐요.”

누군가는 다시 내게 안겨왔다.

‘칭찬이 좋은 걸까?’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드레스를 보자 또다시 찾아온 기시감.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뭐지?’

이번에도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

“…이번에는 좀 늦네….”

누군가가 사라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물론 실제로 시간을 잴 수는 없으니 체감상이지만.

예전에는 누군가가 사라질 때마다 허전함을 넘어선 공허함에 전신으로 소름이 돋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 누군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품에 남은 미약한 온기를 버팀목 삼아 버텼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좀 늦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누군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찾으러 나설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몸을 동그랗게 웅크려 한동안 기다리고 있자니.

톡톡.

누군가가 내 팔을 가볍게 두들겼다.

“아, 돌아왔-”

나는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바라봄과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몸…… 보여요.”

머리카락, 옷에 이어 그것들이 감싸는 몸이 보였다.

기다란 손가락, 귀여운 발가락부터.

쭉쭉 시원하게 빠진 팔다리와 육감적인 허벅지.

날씬한 허리와 대비되는 풍만한…..예.

매끄러운 목과 이 모든 것을 빛내주는 잡티라고는 없는 하얗고 하얀 피부.

다만 얼굴은 아직 흐릿하게 보였다.

내가 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허공에서 방방 뛰어오른 누군가는 내게 안겨왔다.

하지만 뭐랄까….

전까지만 해도 흐릿하게만 보여서 별 생각이 들지 않았었지만….

직접 몸매가 눈에 보이자 좀….

‘…부끄러워! 심장이 미친 듯이…..응?’

나는 문뜩 무언가가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내 가슴에 올려보자.

두근….두근….두근….

규칙적으로 뛰는 생명의 고동이 있었다.

분명 그 끔찍한 무언가를 볼 때만 해도 이 곳에는 텅빈 구멍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는 심장이 있었다.

고동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원인은 당연하게도 내게 안겨온 누군가였다.

심지어 피부가 드러나서 그런지 전에는 없었던 살내음, 체향까지 맡아졌다.

계속해서 맡고 싶은 그 향기에 누군가의 품으로 파고들자, 어떤 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두근….

내 심장소리가 아니었다.

내 소리와 겹쳐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눈앞에 이 누군가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이 감촉, 이 향기, 이 소리…. 익숙해.’

항상 느껴왔던 것들이었다.

매일 밤마다….. 매일 밤마다?

나는 매일 밤마다 이 사람과 같이 있었다!

누군가의 품에서 고개를 뺀 나는 천천히 얼굴을 올려갔다.

그리고 목에 얼굴을 묻었을 때. 나는 무언가를 보고 몸이 경직되었다.

누군가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쇄골에는 단 하나의 흠이 있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

그 자국을 보자 머리가 욱씬거렸다.

“크윽…!”

내 신음에 놀란 누군가가 나를 살피기 위해 몸을 떨어뜨리려 했으나.

꽈악….

나는 오히려 누군가의 품에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기억해…. 기억해! 나를 이토록 도와주는 사람이잖아! 나를 이렇게 품어주는 사람이잖아! 내가…..’

나는 그 자국에 내 입술을 올려보았다.

쪼옥

크기가 딱 맞았다.

‘……이토록 아끼던 사람이잖아.’

내가 이렇게 증거를 만들 정도로 아끼던 사람임에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기억해, 기억해! 기억하란 말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내 뇌를 몰아붙였다.

“기억-”

그 순간.

쓰윽…쓰윽…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한 손길.

두통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고개만 살짝 빼서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한다.

아직 흐릿한 얼굴.

“■■■.”

아직 들리지 않는 말.

그런데도 이 사람은…

-괜찮아.

이런 나에게 괜찮다고 해줬다.

“……”

나는 말없이 누군가의 자국 난 쇄골에 얼굴을 묻었다.

“…죄송해요.”

기억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낼게요.”

반드시.

반드시 기억해내고 말 것이다.

—-

그렇게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얼굴만은 남긴 채.

누군가의 정체를 기억해내는 작업은 정체되어 있었다.

거리를 두고 누군가의 몸을 빤히 쳐다만 봐도.

품에 안겨 오감으로 느껴봐도.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결국 이번에도 품에 안겨 위안을 얻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

“…안들려요.”

미칠 것 같았다.

얼굴만 본다면,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은데.

“■■?”

…답이 없는 것 같았다.

두통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더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아쉬워.

……….

…….

….

‘잠깐, 아쉬워?’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살펴보지 않은 기억의 파편을.

‘감정! 내가 이 사람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이 뭐지?’

나는 누군가에 품을 느끼며 고민을 이어갔다.

‘죄송함. 미안함…아, 이건 같나? 아무튼. 음….아쉬움, 안타까움? 아…. 뭔가 느껴질 것도 같은데….’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본 나는 작디 작은 한가닥의 실처럼 흩날리는 감정을 잡아낼 수 있었다.

‘…이게 뭐지?’

분노처럼 뜨거우며 행복처럼 기분이 좋은.

긴장처럼 온몸이 떨려오지만, 또 마음의 위안이 얻어지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

나는 다시 외적인 부분으로 돌아갔다.

‘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 또 뭐가 있더라?’

유독 기억이 나지 않는 한 단어.

나는 다시 쇄골에 난 자국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토록 아끼던 사람.

‘…아끼던 사람?’

그 순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

부끄러워하는 누군가.

누군가는 이브닝드레스가 아닌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

누군가는 쇄골을 드러내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 쇄골은 지금과는 다르게 깔끔한 상태였다.

“■■ ■■■.”

“….입술 도장 이미 찍었잖아요.”

내 목소리였다.

“■■■. ■■■■■ ■■■ ■■■ ■ ■■.”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이거 저도 다른 사람한테 안 보이는 거 맞죠?”

“■. ■■■■ ■.”

“하아…..”

그리고 기억 속에 나는 누군가의 쇄골에 얼굴을 묻었다.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나고.

얼굴을 땐 쇄골에는 빨간 자국이 남아있었다.

“….■■ ■■■?”

“네?”

“■■■■…”

“….티 안날 곳이라면…”

“■, ■■ ■■■ ■■■.”

마찬가지로 내 목 부근에 기억 속에 누군가가 얼굴을 묻었다.

입술을 땐 누군가가 내 품에 안겨왔다.

“■■■?”

“…아뇨. 그냥 좀….이상하네요.”

한동안 포옹을 이어가던 우리는 살짝 몸을 떨어뜨렸다.

곧바로 다시 겹쳐졌지만 이번에는 입술이 서로 만났다.

기억 속에서 느껴진 바로는 달달한 향기가 났다.

그리고…

두근….두근….두근….

심장소리.

두 개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도,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지금도 똑같이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소리가 점점 빨라지며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쭉 빼냈다.

마침 누군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주한 얼굴로 다가갔다.

비록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아주 잠깐.

내 호흡이 누군가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쪽.

도로 눈을 뜬 나는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 같이 아름다운 눈동자와 그걸 감싸는 기다란 속눈썹.

부드럽게 휜 눈썹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내가 방금 내 것과 맞췄던 부드럽고, 촉촉한, 그리고 따뜻한 윤기나는 진홍색 입술.

이런 이목구비를 이루는 완벽한 비율까지.

그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단 한 가지의 감정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랑해요.”

그 순간.

기억이 폭포처럼 쏟아져들어왔다.

어떤 것은 온전하게, 어떤 것은 조각조각난 파편으로.

그중에서 어떤 기억들은 그 어떤 기억보다 뚜렷하고 화려하고, 빛났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꼭 누군가와 함께 한 기억이었다.

바로 눈앞의 누군가와.

기억이 돌아오자 느껴지는 감정이 더욱 커져버렸다.

아, 진짜.

너무 빠져버렸잖아요.

이제 다른 사람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잖아요.

당신 밖에 떠오르지 않잖아요.

다 당신 때문이야.

그러니까…..

책임져 주시죠.

나의 소중한 가족,

나의 귀여운 외신님.

나의 사랑스러운….

“릴리스.”

누군가, 아니. 릴리스가 환하게 웃었다.

“어서와,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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