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
과연 구울들은 약속을 지켰다.
구울들은 캠프 주변을 돌아다니며 위험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드림랜드에서의 첫날밤은 죽어가는 동물들 소리로 소란스럽게 지나갔다.
구울과의 거래로 늦게 잠에 들었던 나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다.
“냐!”
뭔가 했더니. 가슴 위에 릴리스가 올라가 있었다.
-다른 인간들 시선을 신경써서 모닝키스는 생략했어.
…아쉬워라.
-일어나. 밖에 구울들이 와 있어.
그 말에 이불도 뭣도 없이 지푸라기와 잎사귀로 만든 잠자리에서 일어나 캠프 입구로 향했다….뭐, 사방이 뚫려 있어서 입구라 하기도 뭐하지만.
아무튼 입구에는 나이든 구울이 서 있었다.
“인…간….동..물….고기…줄까..?”
“너희들은 어쩌고?”
“…구그..고….기는…우리의….1년치…..식량이다…다른 식…량….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똑같은 말을 릴리스에게도 들었었다.
“준다면야 우리도 고맙지.”
그렇게 구울들은 한밤동안 사냥한 동물들의 고기를 캠프 입구에 잔뜩 쌓아두었다.
“아, 아서! 이게 다 뭐냐! 고기가 잔뜩 쌓여 있다!”
“좋은 아침 루크. 소개해줄 사…람? 이 있어.”
“음?”
나는 나무 아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구울들을 가리켰다.
“구울이라고 해. 앞으로 우리를 지켜줄거야.”
“저들이 균열의 원주민들인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상당히 못생겼군!”
“그래도 잘 대해줘. 이 고기들도 전부 구울들이 가져다 준 고기니까.”
“그건 고맙군!”
루크는 구울들을 향해 정돈된 자세로 인사를 했고 구울들은 그걸 물끄러미 처다보다가 경계 태세로 돌아갔다.
“다른 학생들한테도 알려줘. 저들은 공격하면 안돼.”
“알겠다!”
구울이 가져온 고기더미에 가까이 다가갔다.
-릴리스. 혹시 저희가 못 먹을 고기가 있을까요?
-음…. 먹고 죽을 고기는 없어. 맛은…. 감당해야 할 문제겠지만.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된 거 아닐까?
“이거 다 먹을 수 있는 고기니까. 알아서 구워 먹어.”
“그건 어떻게 알아낸 거지?”
“…릴림이 알려줬어.”
“역시 고양이는 위대해! 고맙다 아서!”
신나게 고기를 뒤적거리는 루크를 뒤로하고, 슬그머니 캠프를 벗어났다.
캠프는 알아서 잘 돌아갈 것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돌발행동을 할 확률은 적겠지.
캠프와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고 판단한 나는 품에서 릴리스를 꺼내들었다.
-카다스로 향하기 전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탐색하고 가도록 해요.
인원을 확인한 결과 사망자를 제외하면 총 2명의 결원이 있었다.
릴리스는 빠르게 근방을 훑었고.
-한 명. 여기서 좀 떨어진 곳이야.
-상태는 어때요?
-…..움직임이 빨라. 아마도 전투 중인 것 같은데?
-빨리 가보죠.
달려가려던 나를 릴리스가 제지했다.
-워워. 내 능력이 뭔지 잊었어?
-릴리스의 능력……아! 텔레포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능력을 고르던 대화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제는 다른 인간의 눈이 있어서 자제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해.
릴리스의 보드라운 배를 움켜쥔 다음 순간, 나는 다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도착.
놀랄 겨를도 없이 전투의 소음이 들려오자 나는 곧장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전투의 현장에 도달한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남아있었지.”
푸르른 청은발이 허공에 휘날리며 햇빛을 이리저리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아래로 이어진 얼굴에는 머리카락보다 더 파란 쪽빛의 눈동자가 박혀있었다.
청은발과 쪽빛눈. 그건 황제를 제외하고는 마도 제국 내에서 견줄 상대가 없다는 대가문을 상징하는 신체적 특징이다.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전투….아니, 일방적 학살을 진행 중인 여학생의 이름을 내뱉었다.
“…일리나 프로스트.”
우리 학년을 대표하는 수석님께서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바닥에 깔린 흙이 쩌저적 얼어붙으며 빙판으로 바뀌었고, 그 위를 일리나가 매끄럽게 달려나갔다.
빙판 위에서 춤을 추는 일리나는 눈꽃처럼 화려하게 빛났지만, 그 내면에 든 것은 치명적인 피해를 자아내었다.
“끼이에에에엑!!”
이름 모를 괴물이 얼음조각에 몸을 관통당하며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었지만, 그 더운 피마저 냉기에 꽁꽁 얼어붙어 아름다운 장식품처럼 바뀌었다.
장기까지 전부 얼어붙은 괴물은 딱딱하게 굳어 얼음조각상처럼 변해버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상만 십수개.
‘과연 학년 수석이라 할 만한 실력이야. 볼 때마다 소름이 다 돋는 다니까?’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얼음 한조각이 내 얼굴 바로 근처를 스쳐지나갔다.
내 바로 뒤쪽에 자리한 나무에 박힌 얼음조각. 이내 그 나무는 괴물과 마찬가지로 얼어붙었다.
내가 굳은 목을 꺾어 일리나를 돌아보자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 돌아오고 있었다.
“누구지?”
“아서. 너랑 같은 아카데미 재학생이야.”
“…아서. 아서. 아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
“오다가다 들어본 거 아닐까? 아하하하!”
“…….”
“하…..하…하하…….”
좀 받아주면 안 될까요..?
“마침 잘 됐네. 루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아, 너도 그 불을 본 거야? 루크는 지금 캠프에 있어.”
“…캠프?”
“응. 루크의 불을 보고 모인 학생들은 4일 동안 다같이 생존하기 위해 캠프를 세웠어. 지금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곳에 모여있어.”
그러자 일리나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쓸 데 없는 짓이나 하기는.”
작게 중얼거린 말이지만 조용한 숲속에서는 저런 속삭임도 크게 들리는 법이다.
“일리나 너도 캠프에 가지 않을래? 위치는 내가 알고 있어. 따라오기만 하면 돼.”
잠시 고민하던 일리나는 이내.
“필요없어.”
“…어?”
“협동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이야. 나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4일을 버틸 수 있어.”
‘저건 예상 못했다… 모든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게 탈출하기 편할텐데…’
그리고 여긴 단순한 공간균열이 아니었다.
드림랜드는 외신들이 거주하는 아예 다른 차원이다. 일리나도 당해내지 못할 괴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리나 그러지 말고….”
“됐어. 나 혼자 움직일게.”
그러더니 몸을 휙 돌려 멀어지는 일리나.
‘어떡하지…. 일리나를 캠프로 보낼만한 방법이 없을…..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
“루크는 왜 찾았어?”
움찔.
일리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말이랑 매치가 되지 않는 걸?”
“……”
어, 당황했다.
얼음공주라 불리는 일리나가 저런 감정을 보일 줄이야.
그러고 보니 프로스트 가문과 블레이즈 가문은 대대로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하긴 얼음과 불인데 사이가 좋을 리가 없지.’
마침 학년 수석과 차석을 나란히 차지하겠다, 라이벌 의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루크는 안전하니까 걱정마.”
“누가 걱정을 한다고…..”
오호라…. 걱정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네가 봤던 불. 루크가 오버히트 상태에서 쏜 거야.”
“오버히트? 그 정도까지 했다고?”
고개를 홱 돌려 나를 향하는 일리나.
“응. 키가 6….아니 8미터(아님)는 될 정도로 커다란 거인이 나타났었어. 루크가 전력(아님)으로 공격해야 겨우(아님) 쓰러질 정도로 강한 거인이었어.”
“열기는 잡았어?”
“한동안 열기를 잔뜩 뿜어내다가 아주 힘겹게 잡아냈어.”
“지금 루크의 상태는 어때.”
어느새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일리나.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할 상태야. 캠프 주변의 원주민들과 거래를 해서 지금도 안전하기는 하지만…..혹시 네가 가준다면 더 안심될 텐데….?”
“…….”
잠시 갈등하는 일리나. 하지만 내가 추측한 바가 맞다면 다음 반응은….
“…어디야.”
“뭐가?”
“…..캠프. 어디냐고.”
계획대로.
싸늘하다. 가슴에서부터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왜 째려보고 그러세요 릴리스?
-…너 진짜 아서 맞지?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그럼 저가 아니면 누군데요.
-…아서인 척하는 니알….아무튼 다른 놈.
-저 아서 맞아요.
-증명해봐.
-사랑해요 릴리스.
-!!!!!
-물론 가족으로서요.
-…맞네 아서.
맞다니까 그러네.
-갑자기 왜 의심하고 그러세요.
-너야말로 언제부터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하게 됐어? 분명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순수하디 순수한 강아지 같았는데…
…나 개 취급 받고 있던 거야??
-너무하네요. 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건데….. 그러지 말고 칭찬해주시면 안 돼요?
-……
갑자기 품에서 뛰어내린 릴리스는…. 휘리릭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리, 릴리스! 모습을 보이시면-”
“걱정마 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거 알고 변한 거니까. 그리고…”
릴리스가 품을 활짝 벌린다.
“칭찬. 받고 싶은 거 아니었어?”
…너무하시네. 저런 걸 어떻게 거부하라고.
포옥.
오랜만에 안기니 더 따뜻한 릴리스의 품이었다.
-릴리스. 다른 한 명은 어디 있어요?
-아까부터 찾고 있는데. 일단 이 근방에는 없는 것 같아.
짧은 포옹을 끝낸 우리는 다음 학생을 찾으려 했지만, 상당히 멀리 떨어진 모양이다.
‘…하필 또 걔가 문제네.’
마지막으로 남은 학생은 루이스 골드썬이었다.
드림랜드로 떨어지기 직전에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자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릴리스. 사실은 말이죠…
내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릴리스는.
-그런 건 빨리 말했어야지!
-죄송해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어떤 물건으로 벽을 긁었다고?
-네.
-음….
잠시 고민하던 릴리스는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이런. 최악의 경우가 되어버렸는데.
-뭔데요?
-방금 그 인간의 위치를 알아냈어.
-어딘데요?
-…카다스.
-…예?
-그 인간은 우리를 드림랜드로 보낸 신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게 틀림없어.
그리고 작게 중얼거리길.
“….그때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그래도 죽이는 건 안 돼요 릴리스.
-…알겠어.
그리고 다시 중얼거리길
“…살아있는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릴리스를 말려야 하나 살짝 고민되었지만.
‘선을 넘은 건 루이스야. 감당은 본인 몫으로 하자.’
한번 호되게 혼났어도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은 더 크게 혼나야 했다.
죽이지만 않는다면야…
-일단 우리도 카다스로 가자. 가서 탈출을 도와줄 신을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인간도 한 번 찾아보고.
-네. 부탁해요.
고양이로 변한 릴리스를 꼭 안고 있자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은 깍지른 산맥이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들은 보기만 해도 험해보였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그 산맥 중턱에 자리한 거대한 구조물.
그건 거대한 도시였다.
-신들의 도시. 카다스에 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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