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
신들의 도시 카다스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신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생각했던만.
황금으로 지은 집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나무들이 즐비한 그야말로 황금향….이라고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수수하네요.
말이 이렇지 직접 본 카다스는 수수함을 넘어 심심하기까지 했다.
돌산을 그대로 깎아내 거대한 모형도시를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뭐, 황금도시라도 생각했어?
-…정확해요.
-푸흐흐… 신들이 그런 허래허식을 좋아할 것 같아?
-하지만 황금을 제물로 받는 걸 좋아하는 신도 있잖아요.
-그건 황금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인간에게서 귀중한 것을 받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확실히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그럼 릴리스도 황금은 별로예요?
-아니? 나는 좋아하는데?
-…네?
-예쁘잖아.
…신들도 성향이 가지각색인 모양이다.
-도시에 들어가서 주의할 게 있을까요?
-음… 일단 네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티를 내면 안돼. 카다스는 이상한 신들이 잔뜩 있는 곳이라 평범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볼 거야. 뭐든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해.
특별한 무언가라….
잠시 고민하던 나는 릴리스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고양이 모습도 귀여워요 릴리스.”
-무, 뭐야 갑자기?!
“고양이한테 말하는 사람. 이상하지 않아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더 확실하게 고양이한테 사랑고백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제발 그러지 마…
“그럼 들어갈게요 릴리ㅅ…..릴림.”
노덴스에게 배신당한 경험 때문일까, 릴리스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상황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카다스에는 릴리스를 아는 신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미친 짓이지.
카다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시와 같이 돌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끝없는 계단에 의지가 꺾일 려던 찰나. 다시 한 번 시야가 뒤바뀌며 나는 순식간에 도시 입구 앞에 서 있었다.
“고마워요 릴림.”
“냐~”
도시에 들어선 즉시 앞선 릴리스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헐.”
회색빛 돌로 이루어진 도시를 거니는 존재들은 단 한 명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단 인간의 형태를 가진 것은 맞았지만 피부색, 눈동자색, 키와 체형부터 전부 달랐으며 각자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내 옆을 지나간 젊은 남자는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고, 멀리서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남자는 진한 화장을 하고 옷을 헐벗고 있었다.
전세계 괴짜들을 전부 모아둔 것 같은, 어디 동네 서커스에 온 것만 같은 광경에 신기하긴 했으나…
“정말 여기서 저희를 도와줄 신을 찾을 수는 있는 건가요…?
-여긴 원래 이래. 걱정마 저래 보여도 인간들에게 신이라 불리는 놈들이니까.
“릴림 같은 아우터…..외신과 비교하면요?”
-비교할 것도 없어. 쟤들을 한 보따리로 가져놔도 그레이트 올드 원 하나도 못 이길 걸?
천외천. 아우터 갓들은 정말 신 위에 신 같은 개념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야하죠?”
-음… 일단은 우리를 도와줄 신을 찾아야 하는데. 일단은 히프….어?
릴리스의 시선을 따라가보니…..엥?
허공에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떠있었다.
반투명한 젤리같은 몸에 노란 눈이 달려있는 그것은 그 형태가 익숙한 것이었다.
“…해파리?”
해파리가 하늘을 날고 있어!
해파리는 하늘하늘 공중에 떠 있었는데 고양이 같은 두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촉수를 하나 내미는 해파리.
딱 봐도 불길한 예감에 당장 떨어질려고 했지만.
-수호자! 저 촉수를 잡아 아서! 빨리!
다급한 릴리스의 외침에 얼떨결에 촉수를 붙잡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휘리릭 바뀌었다.
릴리스의 텔레포트보다는 훨씬 느린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 해파리 같은 녀석은 히프노스의 수하야.
“히프노스요?”
-인간들은 오래된 고대 신이라 부르는, 노덴스와 같은 소속의 신이야. 그리고 우리를 꿈꾸게 만든 신이기도 하지.
“전혀 괜찮지 않은 거 아닌가요?!”
-걱정마. 히프노스는 다른 신들과는 달라. 진심으로 인간을 도와주는 몇 없는 신 중 하나야. 이 신은 믿어도 돼.
릴리스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정말인 것 같다.
어느새 이동이 끝나자 내가 도착한 곳은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하물며 벽도 없어 보이는 무채색의 공간이었다.
“여기는 또 어디-”
“다행이야! 여기까지 와줬구나!”
갑자기 허공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파도처럼 멋지게 흩날리는 기다란 턱수염과는 대비되는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한 남자는 덥수룩한 머리에 꽃으로 만든 왕관을 얹고 있었다.
남자는 내 손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위아래로 빠르게 휘둘렀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당신은 누구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릴리스를 위해 일부러 한번 더 물어봤다.
“나는 히프노스. 너희 인간들은 꿈의 신이라고 부르지. 실제로 꿈이라는 범위 내에서는 상당히 강한 신이기도 하고.”
히프노스는 입꼬리를 잔뜩 올린 행복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있었다.
“아아, 수호자 한 마리를 카다스에 대기 시켜놓기를 잘 했어. 다행이야.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저기…”
“오! 그래. 궁금한 게 아주 많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내가 빠르게 설명을 해줄게.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여긴 꿈이지만 꿈이 아닌 다른 차원이고. 원래 나는 너희를 안전한 꿈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그 빌어 처먹을 니알라…..큼! 미안. 아무튼 다른 존재가 그 꿈에 간섭을 넣어서 너희를 이 이상한 차원에 던져넣었어. 여긴 아주 위험한 차원이라 빨리 나가야 해. 그걸 내가 도와줄 거고.”
말을 우다다다 쏟아낸 히프노스는 한번 숨을 고르더니 툭 내뱉었다.
“이해 안 된 거 있어?”
“그-”
“없으면 말고.”
“…?”
아니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건데?
히프노스는 허공에서 반짝이는 은빛 열쇠를 꺼냈다.
열쇠는 손잡이 부분에 주홍색 보석이 달려 있었다.
“자, 받아. 열쇠를 허공에 꽂고 손잡이 보석을 꾹 누르면서 돌려. 그러면 현실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릴 거야.”
오, 마침 딱 필요했던 물건이었다.
“다만 이 방법은 약간 편법에 가까워. 내가 지금은 좀 도망치는 신세라…. 아무튼 문은 아주 잠깐 열려. 빠르게 들어가야 할 거야. 질문 있어?”
이번에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바로 질문했다.
“총장님하고 무슨 관계시죠?”
시험이 시작하는 즉시 잠에 빠진 거라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야할 꿈이 원래 시험장소가 될 것이다. 즉, 그 꿈을 만든 신은 시험을 총괄하는 총장님과 커넥션이 있을터.
“일단은 동료. 나는 친구라 여기고 있는데 그놈은 동료에서 그칠 걸? 대답 끝. 빨리 돌아가!”
히프노스가 손을 내젖자 시야가 다시 어지럽게 흔들렸다.
“…특이한 신이네요.”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좀 경박하긴 해도 좋은 신이야.
인간을 친구로 여긴다는 것부터가 히프노스의 독특함을 나타낸다.
워낙 순식간에 진행된 만남이라 허상 같기도 했지만, 손에 쥐어진 열쇠의 차가움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목표 달성이네요. 이제 캠프로 돌아가서 학생들을 넣기만 하면 되겠어요.”
-그 루이스라는 인간은?
“아, 그 놈이 남아있었지….”
솔직히 버리고 가도 싼 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릴 수 있는데 포기하면 마치 내가 죽인 것 같지 않은가.
“일단은 찾아봐요.”
-…알겠어.
다시 회백색 돌덩이 도시 카다스로 돌아오자 릴리스는 곧장 탐색을 시작했다.
-얼마 안 떨어져 있어. 이쪽.
릴리스의 인도에 따라 신들 사이를 걸어갔다.
색색의 피부를 가진 신들을 살펴보며 과연 그들 중에도 알비노가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잠깐만. 멈춰봐 아서.
내려다 본 릴리스는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긴…!
나는 고양이도 얼굴이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왜 그래요 릴림?”
-…고개를 들어서 앞을 봐봐.
릴리스의 말대로 하자 시야에 가득, 커다란 건축물이 들어왔다.
단조롭던 카다스의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장식을 한 건물이었다.
“오…. 마치 왕궁 같은데요?”
-맞아.
“….네?”
아니, 진짜였어요?
-카다스의….아니, 정확하게는 드림랜드의 신 대부분을 지배하는 아우터 갓의 왕궁이야.
신을 지배하는 신이라니… 스케일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깐. 그 얘기를 꺼냈다는 말은…”
-저 왕궁의 주인은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신이야. 그리고 마침 인간의 기운이 저기서 느껴져.
루이스가 그 신을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루이스도 저처럼 계약을 한 걸까요?”
-아마도. 하지만 정상적인 계약은 아닐 거야. 그 신은 인간을 철저히 도구 내지 장난감으로 여기니까.
“…어떡하죠? 캠프로 돌아갈까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릴리스는.
-…좋아. 일단은-
그 순간.
“끼에에에에에에엑!!!!!!”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반사적으로 귀를 막은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왕궁에서 새까만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그곳에서 수십, 아니 백을 넘는 수의 괴조들이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본 카다스의 신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왕궁을 향해 절을 올렸다.
“오오 기어드는 혼돈이시여!”
“세계의 종말을 부르시는 우리의 왕이시여!”
신들의 기도에서 익숙한 이름을 들은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어드는 혼돈? 그건 릴리스의…’
-아서!
날카로운 마음의 말이 내 사고를 꿰뚫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저길 봐!
릴리스가 가리킨 곳은 괴조들이 날아오르는 하늘이었다.
아카데미 정문에 세워진 동상이 생각날 정도로 거대한 몸체를 가진 새들은 전신에 깃털이 아닌 탁한 색의 비늘을 덮고 있었다. 머리는 부리보다 주둥이라고 불러야 할 입이 달려 있었고 형상은 말을 닮아 있었다.
“저게 무슨…”
-자세히 봐봐!
눈가를 좁히며 집중하자 그제야 릴리스가 말하고자 한 바를 눈치챘다.
그 괴조들이 날아드는 중심에 유독 커다란 괴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누군가가 타고 있었고, 그 누군가는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찾고 있던 사람이니까.
“루이스?!”
[!– Slider main contai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