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20



충격과 공포의 분수쇼 사건 이후.

나는 아카데미 내에서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내 심기를 건드리면 그 즉시 모두의 앞에서 똥을 지리게 될 것이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아버린 덕분이다.

그 이후 루이스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듣기로는 수업 도중에도 계속 화장실로 뛰쳐간다거나, 온몸을 비틀며 배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단다.

조금은 안쓰럽다고 생각한-

“통쾌하지?”

불쑥 던지는 릴리스의 질문에 나는 씩 웃으며 답한다.

“당연한 말씀을.”

누군가가 말했다.

복수는 아무런 생산적 가치가 없는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라고.

‘……근데 너무 상쾌한걸?’

배를 감싸고 고통스러워 할 루이스를 생각하자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릴리스를 만나고 매일이 새롭던 하루지만, 오늘만큼은 더더욱 하늘이 파랗고 화창해 보였다.

고양이 모습으로 변한 릴리스를 품에 안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토요일.

수업이 오전 중에 전부 끝나는 행복한 날이다.

‘오늘도 행복하게…!’

—-

“아서!”

왜 안 오나 했다.

“안녕 레티.”

“안녕~ 고양이도 안녕!”

“먁.”

릴리스가 고개를 획 돌려버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레티는 주머니에서 또다시 무언가를 꺼냈다.

“짜잔! 츄르입니다~ 이건 거절하기 어려울걸~?”

자신만만하게 고양이 간식을 건내는 레티지만…

릴리스는 거들떠도 안 본다.

“어라? 분명 고양이라면 환장하고 달려들어야 하는데…?”

그러더니 목소리를 팍 낮춘 레티가 내게 속삭인다.

“설마 릴림은 고양이가 아닌 걸까? 고양이의 모습을 한 무언가라던가.”

….이걸 알아채네. 하여간 감은 귀신 같아요.

다만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미리 대답을 준비해왔다.

“당연히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지. 이렇게 능력 좋은 고양이 본적 있어?”

“….없긴 하지.”

“릴림은….. 평범하게 우리처럼 밥을 먹더라고.”

생명력을 빨아먹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 그럼 다음부터는 고양이 간식 말고 닭꼬치 같은 걸로 가져와야 하나?”

“……”

레티의 머릿속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입력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아서, 오전 수업 끝나면 뭐 할 거야?”

“음…. 그러게. 생각해둔 게 없는데….”

“그럼 나랑-”

“미야옹!!”

“꺄아악! 고양아 왜 그래?!”

무슨 말을 하려던 레티를 향해 릴리스가 달려든다.

“아, 아서! 릴림 좀 말려봐~!”

릴리스가 갑자기 왜 저러….음?

“릴림 이리 와요.”

“미야양!!”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레티를 물어 뜯으려던 릴리스를 붙잡아 내 품에 구속한 나는 레티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설마 지금…. 질투한 거예요 릴리스?”

-멈칫

품 속에서 꿈틀거리던 릴리스의 움직임이 뚝 멈춘다.

‘….맞나보네.’

아무래도 우리 외신님은 나와 있고 싶은 모양이다.

“미안 레티. 일정이 생각났어.”

“무슨 일정?”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기로 했거든.”

“아, 가족은 어쩔 수 없지.”

쉽게 납득한 레티와 만족한 듯 갸르릉 거리는 릴리스.

….릴리스는 고양이로 변하면 하는 행동도 고양이처럼 변하는 것 같다.

—-

수업이 다 끝나고, 레티와 작별한 나는 (잘 가 아서! 가족이랑 데이트 잘 하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릴리스에게 묻는다.

“릴리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이에 턱을 괴고 고민하는 릴리스.

“음…. 나는 이 곳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하긴 어디 가보지도 않고 나와 붙어있었으니.

문제는….

‘나도 모르는데…’

나 같은 가난한 평민에게 약간씩 지급되는 지원금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생활비다.

어디 놀러갈 여유따위는 없었다.

덕분에 이 곳 주변의 지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

“……”

서로만 멍하니 처다보던 우리는 일단은 움직이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봤자 떠오를 것도 없으니까.

나는 딱히 갈아입을 옷도 없어서 그냥 교복을 입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아카데미 주변은 대부분이 학생들이 몰리는 곳이라 교복이 흔하게 보였다. 하지만.

“릴리스. 그 차림으로 나갈려고요?”

릴리스는 늘 그렇듯 새까만 이브닝 드레스 차림이었다.

물론 릴리스의 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잘 어울리는 옷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평상시에 입기에는 좀 튀는 복장이었다.

“그럼 이건 어때?”

릴리스의 머리카락이 꿈틀거리며 형태를 바꿨다.

여러 색이 이리저리 섞이며 만들어진 옷은 내게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교복이네요?”

아카데미 여학생들을 위한 교복이다.

분명 지나 다니며 여러 여학생들을 보았고 나름 익숙해진 복장이었을 터인데….

“어때?”

어떠냐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최고예요.”

분명 단정했을 교복 상의는 릴리스의 굴곡에 맞춰져 상당히 부풀어진 상태였으며, 치마 아래로 보이는 검은 스타킹은 우월한 기럭지의 소유자인 릴리스에게 찰떡이었다.

“후훗, 반했을려나?”

반하기야 진작에 반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네, 반했어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릴리스는 어른스럽게 성숙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교복을 입은 릴리스는 내 선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청순한 분위기가 있었다.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릴리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반할 수밖에 없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밝게 웃은 릴리스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럼 갈까?”

손을 마주잡으며 나도 웃음을 돌려주었다.

“네. 갑시다.”

—-

오늘같은 토요일에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 자제들이다.

그들을 타겟으로 한 상가들이 아카데미 주변에 드러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자연스럽게 마도 제국 최대의 시장터가 만들어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도록 맞잡은 손에 힘이 더해졌다.

“우선 점심부터 먹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휘황찬란한 간판을 단 고급 식당들 밖에 없었다.

창문 너머에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지만, 나에게는 그 창문 너머가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

“다른 곳부터 들르죠.”

발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맞잡은 릴리스의 손이 꿈쩍도 안해 나도 덩달아 멈춰버리고 말았다.

“…..릴리스?”

“여기서 먹자.”

릴리스가 가리킨 곳은 이 거리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따라서 가장 비싼 식당이다.

“굳이 비싼 곳이 아니더라도-”

“돈은 신경쓰지 마.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어.”

이런, 나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렸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다 눈치 챈 모양이다.

“하지만-”

“아서. 나를 싸구려 식당에 들여보내고 싶은 거니?”

“……”

저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릴리스가 내 손을 이끌어 식당에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손님. 어머, 아카데미 학생분들이신가 보네요?”

프론트의 여직원이 우리를 반겨준다.

“보통은 입장에 드레스코드를 맞춰야 하지만 두 분 다 아카데미 교복 차림이시니 입장 가능합니다.”

“식사를 하고 싶은데.”

“결제는 선불입니다. 가격표는 여기-”

릴리스가 돌연 손을 앞으로 꺼내 여직원 앞에 들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당황하는 여직원에게 손을 펴보이는 릴리스.

“이거면 되겠지?”

펼쳐진 릴리스의 손에는 이 식당의 간판보다 더 빛나는 보석장식이 있었다.

색색의 보석이 꽃의 형상을 이룬 장식은 마법등의 빛을 받아 그 색을 사방으로 산란시키고 있었다.

“어…. 손님 저희는 현금만 받-”

거절하려는 여직원의 입을 누군가가 막는다.

“아이고 손님. 이 친구가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여직원 뒤에서 튀어나온 직원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보석을 찬찬히 살핀 직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 보석장식은 두 분이 드시기에는 과분한 값입니다. 거슬러 드리겠습니다.”

“됐어. 그냥 가져. 식사나 맛있게 가져와.”

“셰프께 최선을 다해주시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원이 굽신거리는 것을 보니 보석장식이 엄청난 값을 지닌 모양이다.

“릴리스. 저거 많이 비싼 거 아닌가요? 음식값으로 내기에는….”

이에 릴리스가 가벼운 말투로 답하길.

“나 저런 거 셀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어.”

….아, 외신이었지 참.

직원은 우리를 작은 방으로 안내해줬다.

방문에 붙여진 종이를 보니 방음마법이 걸린 곳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음식이 나올 겁니다.”

꾸벅 인사하며 직원이 방을 나갔다.

이런 방에 들어와서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던 나는 이리저리 방을 둘러보았다.

“신기해?”

“네, 엄청….”

평생 와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곳이다.

먼 발치에서 구경만 했다가 아카데미로 돌아가 학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고마워요 릴리스. 이런 곳에도 데려와주고.”

“너한테는 늘 최선의 음식만 먹여주고 싶었어. 뭐, 최고는 아닐지언정.”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황실에 찾아가야 할 겁니다만.

릴리스는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전주가 나왔다.

일반 술과 무알코올 술이 같이 나왔는데.

“술 마실 줄 아니?”

“딱 한번 마셔봤어요.”

예전에 큰맘 먹고 돈을 모아 싸구려 술을 산 적이 있다.

몸과 마음이 전부 힘들 때라 술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한병을 통째로 마셨음에도 멀쩡했고, 알코올의 찝찝한 맛 때문에 기분이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돈은 돈대로 나가고 기분만 상하자 나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자, 한잔 들어.”

릴리스가 건내는 잔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잔을 든 릴리스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설마 지금 저보고 건배를 하라고요?’

계속 지켜보는 게 아마 맞는 것 같다.

머뭇거리던 나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우, 우리의….. 첫 데….나들이를 축하하며. 건배.”

윽… 데이트라고 할 뻔했어.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

릴리스가 잔을 높이 든다.

“건배.”

잔을 쭉 들이키자 우선 달달한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바로 이어서 알코올의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일단 내가 전에 먹었던 싸구려 술과는 비교도 안 될 고급술인 모양이다.

혀에 감기는 향이 차원이 달랐다.

“한잔 더?”

내게 병을 내미는 릴리스.

“…..딱 한잔만…”

—-

이어서 나온 식사는 단연컨데 내가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음식보다 화려하고 고급지다는 감상이 들었다.

음식을 하나의 예술로 치환시킨 작품들이 연달아 나왔고, 나는 무엇부터 먹어볼지 행복한 고민을 이어갔다.

고기는 씹을 때마다 터져나오는 육즙이 환상적이었으며, 곁들여진 채소들은 익힘 정도가 아주 좋아 식감이 살아 있었다.

“맛있어?”

“우물우물…. 네!”

“많이 먹어.”

릴리스는 식전주만 홀짝이며 음식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그 모습이 살짝 마음에 안 들었던 나는 고기 한조각을 찍어 내밀었다.

“릴리스. 아~”

이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지은 릴리스가 싱긋 웃으며 입을 벌렸다.

“아~”

고기를 넣어주자 입을 꼭 닫고 고기 조각을 오물오물 씹는 릴리스.

그 치명적일 정도로 귀여운 모습에 나는 무심코.

-쪽

부푼 릴리스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릴리스가 작게 투덜거린다.

“볼에다 말고 입에다 하지….”

하지만 저 빵빵한 볼이 너무 사랑스러운 걸요.

나는 그 뒤로도 식사 중에 간간히 릴리스에게 음식을 건넸다.

일방적으로 받아먹는 것이 부끄러운 건지 릴리스가 내게 먹여주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맛있어?”

“네.”

“이것도?”

“네.”

“진짜 맛있어?”

“네.”

음식을 줄 때마다 내게 맛을 물어보는 릴리스.

처음에는 그저 내 만족도가 궁금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흐응….”

내 대답이 이어질 때마다 릴리스의 눈이 점점 가늘어진다.

‘뭐, 뭐지. 내게 뭘 잘못했나?’

이건 마치 야설을 들켰을 때의 그 분위기.

“맛있구나….그래…..그렇구나…?”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드는 말투다.

‘뭐지? 진짜 뭐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불편한 식사가 이어지던 그때.

“맛있어?”

“…네.”

“얼마나 맛있어?”

그 순간 벼락같이 떠오른 해답.

“….맛있긴 한데…”

“한데?”

나는 릴리스와 시선을 맞추고 또박또박 답을 내놓았다.

“릴리스가 해준 밥이 더 맛있어요.”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그래?”

짧게 답한 릴리스.

딱히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릴리스의 기분이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우…. 다행히 정답이었나 보네.’

그 뒤로 릴리스는 내게 음식을 주며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음식을 씹어삼키는 모습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지켜볼 뿐이었다.

다시 평안해진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 돌연 릴리스의 미간이 좁혀진다.

의아했던 나도 곧이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음마법을 뚫고 들어올 정도면 있는 힘껏 소리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윽고.

-쾅!

문이 큰 소리와 함께 거칠게 열렸다.

“네가 누군데 감히 내 스위트룸을 차지……..어?”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루이스?”

나를 본 루이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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