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16



다행히도 수련장에는 자동수복 마법이 걸려 있었고, 덕분에 바닥에 쭉 그어진 흉터는 점점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서. 나와 얘기 좀 하지.”

“릴….얘는요?”

릴리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교수님도 머뭇거리더니 들고 오라고 하셨다.

저 혼자 갸르릉 거리는 릴리스를 향해 기가막혀 하는 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지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채 빠르게 교수님을 쫓아갔다.

교수실에 단 둘이서….정확히는 두 명과 한마리만 남게 되자 교수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힐끔 릴리스를 바라본 교수님은 다시 한 번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은 언제 했지?”

“그저께요.”

“왜 바로 보고하지 않았나.”

“저도 실감이 잘 안나서…”

“…….과연.”

마른 세수를 한 교수님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며 내게 맞은편 의자를 권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옆자리에 릴리스를 내려놨지만.

“먁!”

어림도 없다는 듯이 의자를 뛰어넘어 내 무릎에 안착하곤 몸을 돌돌 말아 누워버렸다.

한없이 고양이스러운 그 모습에 나도 교수님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내가 비록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런 힘을 사용하는 고양이는 듣도보도 못했다.”

“저도요….”

“그 고양이가 반으로 갈라버린 수련장 바닥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고 있나?”

무려 총장님이 마법을 거신 장소다. 당연히 튼튼하겠-

“운석이 떨어져도 그 수련장은 부서지지 않을 정도다.”

…..예상보다 더 정신나간 강도였다.

만든 총장님도 대단하지만 그걸 또 갈라버린 릴리스는 도대체…

“그 고양이. 네 통제는 확실히 듣나?”

“어… 아마도요?”

“아마도면 안된다. 확실해야 해. 너는 지금 휴대가능한 전략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상황에 따라선….”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오금이 저려왔다.

“너를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

총장님이 너무 압도적인 거지. 사실 아카데미에 재직 중인 교수님들은 전부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이다.

특히 눈앞에 레이커드 교수님은 차세대 대마법사라 평가받는 천재 중의 천재.

그런 자가 살기를 뿜어내니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하악!”

그때 릴리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꼬리를 곤두세우며 교수님에게 맞섰다.

놀랍게도 릴리스가 나서는 그 즉시 내게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충성심은 있군.”

살기가 사라지며 다시 잔잔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릴리스는 지켜보겠다는 듯 완전히 몸을 말지 않고 얼굴만 빼꼼 내민 자세로 도로 누웠다.

“출력의 한계는 알고 있나?”

“아뇨… 제대로 공격명령 내린 게 이번이 처음이라….”

잠시 고민하던 교수님은 허공에서 열쇠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열쇠와 교수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수련장 열쇠다. 밤이든 언제든 사람 없을 때 들어가서 그 고양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놔라. 힘의 종류, 출력, 한계까지 전부.”

그냥 물어보면 알려줄텐데….

“네, 알겠습니다.”

“학장님과 총장님께는 내가 보고하마.”

몸을 일으키는 교수님에 따라 릴리스를 들어올린다.

다시 수련장으로 복귀하는 길에 문득 떠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저어….교수님…?”

“뭐지?”

“혹시 제 패밀리어를 압류할 수도 있나요?”

이 말에 품에서 꿈틀거리는 릴리스를 애써 무시하고 고민하는 교수님에게 집중했다.

“음…. 패밀리어와 계약자는 때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평범한 경우라면 아니겠지. 다만 너의 그 고양이는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어. 나도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모르겠다.”

“그 결정은 누가 내리시죠?”

“최종결정권자는 총장님이다.”

…그나마 학장님이 아닌 게 다행인 건가?

수련장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레이커드 교수님이 내 앞을 막아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혹시라도 방금 같은 광선이 학생들을 향하는 순간. 나는 전력을 다해 널 죽이려 들거다. 내 손에 학생의 피를 묻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라.”

“넵, 알겠습니다.”

“냐악!”

너 따위가 뭘 위협을 하냐는 듯 항의하는 릴리스.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다만. 그 고양이 암컷인가?”

“네.”

“중성화를 고민해보도록. 아카데미에는 수컷 고양이가 없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

나는 고양이 얼굴이 저리도 처참히 일그러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수련장에 복귀하자 다시금 학생들의 이목이 끌렸다.

아마도 방금 전 릴리스가 보여준 공격의 위용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겠지.

‘하하… 내일이면 소문 다 퍼지겠네.’

힐끔 시선을 굴려 루이스를 보자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했다.

저건 좀 꼬시네.

그 뒤로 수업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리 자동수복 마법이 있다곤 한들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련장 바닥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이런 환경에서 수업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레이커드 교수님은 수업을 일찍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전 마지막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 하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선이 몰리는 것을 느꼈다.

‘벌써 소문이 퍼진 건가? 빠르기도 하네.’

하긴 그런 굉음이 울렸는데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학생과 교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나를 지나치며 뭐라 수군거렸고 나와 릴리스를 쳐다보았다.

그건 수업을 듣는 강의실에 와서도 이어졌고, 좁은 공간에 들어오니 수군거림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쟤가 그 소리의 원흉이라고?”

“정확히는 저 고양이래. 패밀리어라는데?”

“고양이 귀엽다!”

“찍히면 바로 냥냥데스빔으로 반갈죽을 내버린다는데?”

….뭔가 이상한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처음으로 받는 제대로 된(?) 관심에 얼떨떨함과 동시에….

‘이거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구나?’

수많은 시선이 쏠리니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조심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듯한 부담감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교수님이 들어오자 간신히 수군거림은 없어졌지만 시선은 여전히 느껴졌다.

교수님 또한 들어오자마자 강의실을 둘러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책상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하품을 하고 있는 릴리스를 쳐다보았다.

레이커드 교수님한테서 전달은 받은 건지. 책상에 고양이가 올라와 있어도 별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

사람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나 또한 릴리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라도 수업 도중에 릴리스가 소리라도 지르면 당장 품에 안고 뛰쳐나갈 생각까지 했다.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릴리스는 털을 고르거나 자신의 육구를 꾹꾹 누르는 등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띵동댕동

“그럼 모두 점심 맛있게 먹-”

수업이 끝나는 즉시 교과서를 주머니에 쑤셔넣은 나는 릴리스를 품에 안고 우다다다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복도를 지나, 공원을 지나, 다시 복도를 지난 나는 곧장 기숙사방으로 들어갔다.

“허억….허억…..”

기숙사 방문을 굳게 잠그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냐아~”

품에서 꿈틀거리는 릴리스를 놓아주자 바닥으로 뛰어내린 릴리스는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흐으읏! 역시 나는 인간 모습이 적성에 맞나봐~”

릴리스는 기지개를 쭉 피더니 이리저리 관절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어때 아서. 나름대로 잘 했던 것 같은데.”

“……잘했다고요?”

“그렇지 않았어? 주변에 있던 인간들 표정이 상당히 재밌던데?”

“릴리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천천히 주저앉았다.

“너무 과했어요….”

“어머, 그래? 이정도는 해야지 다른 인간들이 널 무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레이커드 교수님 말이 맞아요. 너무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문제라니까요?”

“흐음… 다른 곳에서는 이러면 무시 받지 않았거든. 여긴 또 다른 모양이네.”

무시는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것을 보고도 나를 무시하는 놈은 머리가 장식인 놈이겠지.

다만 문제는 학장님과 총장님이었다.

특히 학장님은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데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니….

‘공정하신 총장님께 걸 수밖에…’

부디 릴리스를 압류하겠다는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마. 만약에라도 너와 나를 떨어뜨리려고 한다면….”

“한다면?”

“싹 다 부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야. 조용한 무인행성은 어때? 거기서 단둘이 행복하게 사는 거야.”

…무인 ‘행성’? 섬이 아니라 행성?

외신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장난 아니었다.

“릴리스…”

“아, 인간은 안 죽일게. 일단 아카데미 통째로 싱크홀에 빠뜨리면…”

살펴보니 릴리스의 눈빛이 살짝 죽어있었다.

안되겠다. 도저히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나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이 돌아간 모양이다.

“…..뭐? 중성화? 감히 누구한테 그런 망발을! 그 인간만은 반드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릴리스.”

“아니면…”

“릴리스!”

아카데미 멸망 시나리오를 줄줄이 나열하던 릴리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리와요.”

일어나 양 팔을 활짝 펴고 릴리스를 마주봤다.

그러자 눈에 빛이 돌아온 릴리스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한다.

“저도 릴리스랑 떨어지기는 죽어도 싫어요.”

나와 키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힌 이 사랑스러운 외신을 살살 달래듯 나지막히 속삭인다.

“그래도 남들한테 피해가 가지는 않도록 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다치면 억울하잖아요.”

“…..알았어. 조심할게.”

“고마워요. 대신이라기에는 뭐하지만….”

몸을 살짝 빼서 릴리스와 얼굴을 마주했다.

“앞으로 점심시간에는 항상 릴리스 곁에 있을게요.”

내 말에 릴리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말? 정말 같이 있을거야?”

“그럼요. 저도 릴리스와 같이 있는 시간이 가장 좋은데요.”

진심이었다.

“꺄악! 아서 최고!”

내게 안겨오는 릴리스를 나도 꼬옥 마주 안아주었다.

언제는 요염하고 성숙한, 그리고 장난기가 있는 새침한 고양이 같은 릴리스지만, 이렇게 앵겨올 때면 귀엽고 순수한 강아지 같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릴리스는 거리감을 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제는 성숙한 어머니처럼, 언제는 장난스런 누나처럼, 또 언제는 지금같이 귀여운 여동생처럼.

릴리스도 나처럼 가족이라는 관계가 서툰 것이다.

확확 바뀌는 거리감이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이런 릴리스의 모습까지 전부 좋아하는 것이리라.

“빈틈 발견!”

멍하니 있던 내게 릴리스가 입을 맞췄다.

-쪽

“후훗, 방심하지 말라고~”

언제 귀여웠냐는 듯이 다시 누님모드로 돌아와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 릴리스.

아, 진짜….. 너무 사랑스러운 거 아닌가?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내 쪽에서 입술을 내밀었다.

릴리스가 해준 것보다 더 진하고, 더 길게.

—-

점심을 릴리스가 해준 요리로 ( “이번에는 무슨 음식이죠?” / “올드 원 회무침!” ) 해결한 나는 다시 수업으로 복귀했다.

당연하지만 내 품에는 릴리스가 안겨 있었다.

매번 안고 있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걸어갈 수는 없냐고 건의해봤지만.

“아직 고양이 걸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분명 꿈에서는 잘만 걸어다녔는데…?

‘그래도 뭐… 따뜻하니까. 좋기는 하네.’

뭔가 핫팩 취급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좋은게 좋은 거다.

릴리스는 계속해서 내 수업을 따라다녔고,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도 같이 따라다녔다.

몇시간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게 된 나를 돌아보니 새삼 인간의 적응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레티와 겹치는 과목이었다.

“안녕 아서~”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 레티.

“하악!”

누워있던 릴리스가 즉각 고개를 들고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릴리스의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레티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너도 안녕 고양아~ 이거 먹어볼래?”

시장에서 파는 고양이 간식이었다.

“푸흡!”

얼빠진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는 릴리스의 모습에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째려본 릴리스는 몸을 둘둘 말아 누워버렸다.

“엥? 관심없어? 이거 구하기 힘들었는데…. 고양아 진짜 안 먹을래?”

미동도 안하는 릴리스.

“흠…. 소식하는 앤가? 얘 이름이 뭐야?”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릴림.”

내 대답에 릴리스가 움찔거렸다.

“어머, 이름 예쁘다! 암컷이야?”

“응. 아마 배불러서 못 먹는 걸거야. 점심시간에 많이 먹였거든.”

“적당히 줘야해. 고양이들은 살 찌는 거 순식간이야.”

-움찔.

어허, 릴리스. 거기서 반응하면 안됩니다.

“아, 맞다. 아서 너한테도 줄게 있어.”

“응? 뭔데?”

나는 앞선 사건들에 치여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레티이며, 이 정신나간 친구는 정기적으로 상식 바깥의 행동을 한다는 것을.

주머니를 뒤적이던 레티가 꺼낸 것은…

“짠! ‘촉수와 함께하는 여름방학’ 1권! 관심 있어보이길래 히힣.”

“!!!”

보라색 촉수가 여자아이를 감싸고 있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표지가 눈앞에 드리워진다.

화들짝 놀라며 낚아챈 나는 곧장 레티에 주머니에 도로 쑤셔넣었다.

“너 미쳤어? 여기서 그런 걸 꺼내?”

“괜찮아. 아무도 안 보는 구석자린데 뭘.”

레타 말대로 여긴 구석자리였으며, 마지막 수업이라는 기대감에 학생들은 드디어 나를 향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다.

시선을 살짝 돌려 릴리스를 바라보는데.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릴리스와 눈이 맞았다.

릴리스의 빨간 눈이 나와 레티의 주머니에 반쯤 들어간 책을 번갈아 오간다.

아, 좆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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